김주혁 Kim Joo-hyuk


배우 고김주혁을 인지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배우로서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기 이전부터 기억에 남은 몇 가지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충무로가 되살아나며 다양한 개성을 지닌 연기파 배우가 등장할 때, 개인적으로는 연기의 폭이 아니라 고유한 스타일과 패션에 관한 애정으로 먼저 눈에 띈 배우가 고 김주혁이었다. 어느 오래된 잡지 인터뷰에서, 그는 휴가를 보낼 수 있다면 유럽 패션 편집매장들을 순례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 즉시 호감이 생긴 것은 당시 나 또한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하는 묘한 동질감 때문이었다. 

선 굵은 남성상이나 아찔하게 고운 미남형이 아니었기에, 어떤 역할에도 어울리는 얼굴과 모나지 않은 체형으로 그가 입은 옷들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톰 브라운 Thom Browne 같은 디자이너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을 때 그는 이미 시대를 바꾼 디자이너 수트의 고객이었다. 더 전위적이면서도 스트리트웨어 streetwear 영향을 받은 2000년대 중후반 일본 디자이너들의 상징적인 의복 역시 김주혁이 참석한 영화제 레드카펫에 함께하였다. 

그간 운 좋게도 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배우를 인터뷰했지만 이상하게 그와는 연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런 사적 교감 없이, 그저 대중이 바라보는 마음으로 그의 연기와 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스타일의 팬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세련되었고, 오래도록 풋풋하였으며, 훗날 더 나이를 먹어 원숙함마저 배어난 때에도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한 번 그와 마주친 적은 있다. 물론 알아차린 건 나 혼자였다.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건너편 오래된 외국 서적 전문 서점 ‘이레서적’에서, 그는 멋진 수트 차림으로 막 문을 열고 나가는 중이었고 반대로 나는 들어가던 차였다. 속으로 아, 하고 경탄했다. 잡지와 외국 출판물들이 일로써 필요한 업계 사람들이나 여전히 패션 잡지를 아주 좋아하는 매거진 키즈들이 아니고서는, 굳이 방문하지 않을 곳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는 참 ‘옷’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벌써 10년 가까운 과거로 남았다.

가장 최근 본 그의 작품은 드라마 <아르곤>이었다. 8부작으로 짧고 굵게, 늘어지는 기색 없이 훌륭하게 마무리한 이 ‘저널리즘 드라마’의 8할은 단언컨대 김주혁의 공로였다. 그가 연기할 때, 유독 다른 배우들보다 스타일이 눈에 들긴 했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사적 취향을 작품 안에 과도하게 반영하는 아집은 그에게 없었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정론을 고민하는 언론인 그 자체로 보였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 The Newsroom>과 같은 이름의 JTBC <뉴스룸>이 함께 떠오른 것이 나 혼자는 아니었을 거다. 

오늘 그의 비보가 전해진 후,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 역시 그의 마지막 드라마를 언급하며 일종의 연대감을 느꼈노라고 하였다. 그의 연기는 ‘현실’에 놓인 사람들이 다시 그 현실을 곱씹을 정도로 묵직하였다. 그사이 털털한 속내가 슬며시 비추는 장면 또한, 김주혁의 전매특허 같은 매력이었다.

향년 45세. 너무나 안타깝게, 호수 위를 비추는 달처럼 은은하던 배우가 세상을 등졌다. 그의 동료들, 가족과 연인,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던 모든 이의 마음이 어떠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작별이다.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故 김주혁Kim Joo-hyuk, 1972 - 2017

© Image courtesy of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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